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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2010년 시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권지현
1968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성장함,
국민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200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2009년‘김수영 시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 받음,
현재 국민대학교 강사

<심사평> 담담하고 소박하면서 서정성·균형감 가져

좋은 작품이 여러 편 눈에 띄었다.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는 담담하고 소박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담담하고 소박하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공항 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 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갈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처럼 평이한 일상 속에서 삶의 결을 찾아내는 눈은 결코 예사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를 가지고 무슨 엄청난 것을 해보겠 다는 허영심이 억지와 무리로 이어지면서 읽기 어려운 시가 범람하는 우리 시단을 향하여 던지는 새로운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낡지 않은 서정성과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비판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주말부부의 쓸쓸한 삶의 단면을 그린 ‘냉동실’이며 박물관을 통하여 과거와 오늘을 대비시킨 ‘플래시’도 이 작자의 저력이 탄탄함을 말 해준다.

고민교의 ‘어느 결혼이민자를 향한 노래’는 아주 재미있고 따뜻하면서, 시의에 맞는 주제이기도 하다. 쉽게 융합할 수 없는 둘 사이를 가래추자에 비유한 것도 적절하고, 간절한 마지막 구절도 강한 울림을 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는 역시 시의 특성을 버릴 수 없으며, 시가 산문의 상태를 그리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신은유의 시 가운데서는 ‘고딕식 첨탑’이 가장 좋았다. 좀더 난삽한 ‘바닥만 보면서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도 마찬가지이지만,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읽으면서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너무 말이 많고 어지럽다. 말을 고르고 빼는 보다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면 참으로 좋은 시를 쓸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상 세 사람의 시를 놓고 토의한 끝에 선자들은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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