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작품 글창고

불교신문 2025년 소설

졸(卒)의 봉기(蜂起)

박찬우

없다. 그 말고는. 다 찌꺼기들이다. 지금 남은 이들 중에는 인재가 없다.
언제 넘어올지 모른다. 저 흉포한 족속이 넘어오면… 이 나라는 끝이다. 넘어올 수 있다. 예라든가 의 따위 모르는 것들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아니 솔직히 생각하자… 생각도 있는 그대로 못 하는가……. 전쟁에 예나 의가 어디 있던가.
살육과 생존뿐임이 전쟁임을, 내 모르지 않는다.
명나라를 믿을 수 없다. 임진년과 정유년, 그들도 군사를 많이 잃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 그들 역시 저 흉물들을 상대함에 애먹기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지경이란 것 아닌가. 땅덩이만 믿고 설치더니… 그들도 끝났다. 현실이다.
여진… 저들과 척질 순 없다. 안 그래도 무슨 약점이라도 잡아 날 끌어내리려는 목적으로 사는 이 사대부 놈들 상대하는 일도 벅참인데 어찌 저 오랑캐들까지 저러는 와중이란 말인가. 불타 없어진 궁 재건에 신경 씀만도 머리 터질 판이다.
이런 때, 그 말고 누가 있으리란 말이냐……. 허, 허허… 그의 나이가 예순여섯이라던가 일곱이라던가. 믿고 맡길 이가 그 나이든 중뿐이라 여김이… 지금 내게 닥친 실제(實際)란 말인가.
내가 알기에 그런다. 남은 무신들 가운데라도 찾고 찾는다면 어찌 인물이 없겠는가. 조금만 이성을 취하고 따져본다면야 남은 신하들이라고 왜 다 용맹함이라곤 없는 협잡꾼들뿐이겠는가. 하지만… 다른 것이다.
해도 되지 않을 일에 나섬이 용맹함이다. 맡겨진 책무가 아닌 일에 뛰어들 수 있는 이들은 흔하지 않다. 더구나 그 일이 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인데 그리 행동한다면 그것이, 숭고함이다. 세상에 숭고한 인간이 몇이나 될 것이며 그런 이야말로 인재로 불러야 함은 마땅한 이치라 할 것이다. 나는 그 정도의 인재를 쓰고 싶다. 아니 그 정도의 인물이 아니라면 믿을 도리가 없음이다. 누구 하나는 믿을 수가 있어야 내 속에도 근심이 없고 그래야 통치든 통솔이든 해나갈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전장에 있어 보았기에 안다. 내가 손에 칼을 잡아 보았기에 안다. 내가 적의 배에 칼을 찔러 넣고 몸을 꿰뚫어 보아 아는 것이다. 나만 해도 해야 해서 한 일이다. 나밖에 없었으니. 나까지 내 선친과 형제들 따라 그렇게 굴었으면 나라며 왕조까지 끝나는 거였으니까. 내게 왕의 자린 없게 되는 거였으니까. 그런데 대사(大師) 당신은 그럴 필요가 없었잖소? 단 하나의 근거, 나라를 위함. 오로지 백성으로의 도리로. 깨우침의 세계를 연마하는 자로서의 책무로. 나라를 방비하려 외세와 대면하여 부딪히는 책무는 응당 군에 있는 것임을, 강하게 훈련되지 않은 군대를 가진 나라의 백성인 죄로 그 죗값을 치르려 당신은…….
나 역시 직접 칼을 들 필요 없는 신분으로 칼을 들었소만 그거야 앞서 말했듯 내겐 지킬 게 있어서였소. 그렇게 하고도 겨우 가진 이 자리지……. 허허. 염치없어도 내겐 대사 같은 신하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건만, 어찌 병에 들었단 말이오? 빨리 나으시오. 대사께 보낸 약이 효험이 없으면 목숨을 거둘 것이라 의관을 으르러 특별하게 귀한 약재를 다 들여 제조한 약이라 하오. 나으시오. 북방을 맡아 주시오. 여진을 막아 주시오. 임금인 내게, 내 심신에 안심을 좀 허락하시오.
내 편으로 든든히 부디 있어 주시오.
“아 왔는가, 대사가 네 스승이라지?”

2

난 물러남의 예를 표한 뒤 뒷걸음으로 임금의 처소를 벗어난다.
불행한 자구나. 제 선친의 의심병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자진해서 전장 한복판에 나선 왕자이기에, 모든 백성과 신하들의 압도적 지지로 왕의 자릴 가짐에도 저리 안절부절 중이라니.
믿을 자가 없다 여김도 딱하다. 병석에 들 나이가 되어 병이 드신 분에게, 그리하여 마지막 쉼을 위해 은거하신 분에게 북방의 경비를 맡길 생각을 하다니. 그래도 나라 위해 칼 들었던 내 스승에게 취한 예에는 나도 머리 숙이오.
안 된 왕에 불우한 백성이다. 궁궐의 재건에 너무나 많은 값이 들고 있다. 저자가 왕의 자리에 오른 지 이제 이 년도 되지 않았는데 백성들이 왕을 원망하고 있다. 긴 전란에 이미 고됨의 극치에 이른 백성들인데 그들에게 취하는 세와 노동력이 한계에 다다름을 저자는 모르는가.

유자(儒者)의 집안에서 나, 어릴 때부터 좋은 스승들에게 사사함은 축복이었음을 안다. 인과 예와 의와 충을 목숨보다 귀히 여김으로 진짜 사대부로의 삶을 사신 내 부친은 다행히도, 글자 안에 갇히신 분이 아니었다. 그 어느 집안의 여인도 온전한 학습으로 글을 대할 수 없음이 당연히 여겨졌음에도, 내 누이는 일찍부터 나와 더불어 글의 세계를 접할 수 있었다. 내 이복형과 동복형도 모두 기품 있는 유자였다. 그들 또한 좋은 스승과 벗들을 사귐으로 바른 방향의 사고를 얻은 분들이다. 형님들은 그 앎의 범위를 유학 안에 가두지 않았다. 많은 사대부 집안이 유학 이외의 사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유학 이외의 학문은 그들과 이 나라 안 모든 이에게 학문이 아님을 모르는 이 없으리라.
유자로서 거열형을 각오하고 말해보자면 유학은 편협한 학문이다. 사람으로의 기본 도리에 이르도록 이끄는 갸륵한 배움이지만, 그 기본 도리란, 모든 백성에게 공평히 적용되는 가르침이 아니다. 정해진 집안에서 태어난 운을 누린 특정 계층의 사람에게만 좋은, 그런 좁은 도리를 말함이 유학이다. 그래서 그들만이 갖고, 놓지 않으며, 양반이 아닌 사람에겐 절대 주지 않음이, 바로 글이다. 유학이 만백성을 위한 진실한 정도(正道)를 말하는 학문이라면 그럴 리가 있는가. 글을 통해 힘을 갖음이고 힘의 근원이 글임을 알아 그것을 나눠주지 않는 것이다. 유학만이 진리이고 정의이며 다른 것들은 이단에 요설이라 일컬음이 유학의 본질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특정 몇몇만이 권력과 안락과 이득을 누리려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임인가 말이다. 저 백성이란 이름의 자들은 태어나는 순간 버러지로 계급이 정해진 채임이 엄연하고도 마땅한 세상의 이치인 것인가?
유학이 편협함은 글을 사대부만의 전유물로 변질을 시켰기 때문인데, 글 자체만으로는 그 안엔 드넓은 사유의 세계가 열려 있음 또한 사실이다. 일평생 그 세계를 접할 기회도 받지 못하고 행여 접하려 함은 죄이며 실제 접하면 죄인이 되어 버림이 정도와 정의가 맞는 것이겠는가? 그 은밀한 비밀과 결정적 함정을 갖고 있음이, 나와 저들이 가진 유학이란 권세의, 실체이다.
애초 유학의 본질이 어디 그러했으랴. 먼저 접한 이들이 그 안의 가르침을 교묘히 비틀어 계급으로 구분 지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급기야 지금에 이르듯 왕과 몇몇만을 위해 이 세상이 존재함이 참인 것으로, 나라 안 모두의 머리에 세뇌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로 천하의 이기적인 사상으로 전락해 버림이 유학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조차 그렇다. 특권층으로 이렇게 나라 조정의 녹을 먹으며 백성 위에 군림해 있는 버러지다.

이제 변명을 해보고도 싶다. 다른 버러지들은 저가 버러지임을 모르지만 이렇게도 나는 내가 버러지임을 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어릴 적, 유학 외의 많은 세계를 접함이 가능한 기회를 얻어서였다. 내 형은 나와 내 누이에게 좋은 스승에게 사사하도록 해주었다. 손곡 이달. 그를 통해 유학이 단순히, 글을 깨우치고 외우고 앵무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님을 앎에 이르렀다. 유학의 최고 경지는 경전을 외는 것이 아닌, 시를 터득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삶은 고대 경전에 있음이 아님이고 시에 있었다. 냇물과 나무를 예로 들면 그것들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을 눈으로 보든가 안 보든가 함이 아니었다. 느끼며 받아들이는 영역에 해당했고 그래야 삶을 누리는 내 모습을 더불어 아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깨우치도록 마땅히 도달해야 함이 시임을, 그 스승 덕에 터득했다. 사람의 삶은 시에 있었다.
내 형님은 또 한 명의 귀한 스승에게 나를 이끌었다. 유학만으로 충족되지 않고, 풀리지 않던 갈증을 그 스승을 통해 해소했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어른이었다. 아까 임금이 애타게 애달파한 그가 바로 그다. 유정 사명당(泗溟堂).

학문과 사상에 높낮이나 격차를 말하려는 자가 있다면 경계해야 하리란 말을 누가 한다면 난 동의할 것이다. 지금까지 여겨본 바대로 유학만이 유일한 진리라 말함이 유학의 결정적 맹점임을 모르지 않기도 하거니와 다양한 배움을 받은 자로서 그 배움에 순위를 매기는 아둔함에 머무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佛)은 보다 높은 영역에 있었음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매력이 깊었다. 그렇게 느낌은 다른 데에 있지 않다. 즐거워서다. 불은 즐거운 영역에 있는 학문이었으며 그렇게 다가옴에 반가웠다. 그 즐거움이란 또한 공교롭게도, 유학과의 결정적인 다름에 있었다. 불은 그리고 부처는 높은 이들을 위함이 아님이, 그 즐거움이었다. 임금은 임금의 신하는 신하의, 부모는 부모의 자식은 자식의, 형은 형으로의 동생은 동생으로의, 선비는 선비로의 백성은 백성으로의… 너희 각자로서, 그 각각의, 도리를, 그것을 알고 행하라, 그리 가르치는 사상이 아닌 세계가 불이었다. 각각의 도리와 의무와 영역이 따로 있다, 가 아니었다. 세상은 사람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움직여야 할 방향이 나누어져 있음이 아님을 알도록 이끌어 주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것은 어찌할 바 없이, 적어도 내 주관적 영역에서는, 학문마다의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긍정하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역설적(逆說的)이게도 그만, 나뉘는 것이었다.
나와 내 무리만 안락하면 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노동 따위 안 하며 권세를 누리는 쪽은 우리만일수록 좋다고 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높은 세계를 알 기회 박탈당한 채 농사만 짓고 세금만 내는 쪽은 많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간신인 자와 충신이고자 하는 자, 바르지 못한 자와 그렇지 않아보려는 이가 나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누어지고 그래서 부류가 만들어지고 그 나뉨의 갈래를 긍정하도록, 본질이 변해버린 학문이 유학이란 말이다. 또한, 그 변함이 유학의 본질인 양 여기는 자들과 아닌 이들로 나뉘는 것이었다. 그 손상된 가르침을 긍정하고 수긍하며 진리라 여기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이로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 구분이 있음을 깨달았기에 서로 다른 학문 간에 격차가 없지 않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음이다, 라고 나는 고백하고 싶다.
손상된 가르침과 배움에 문제의식을 애써 갖지 않으려 드는 자들이, 바로, 불(佛)을, 억압하고 싶어 함이다. 불이 높은 자 낮은 자 따위 구별되지 않는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애초 높고 낮음의 구별이 있는 채로 태어나지 않으며,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건, 살아가는 동안 당사자가 저 사는 모습으로 스스로 결정함이라 가르치는 학문이 불이기에 불을 억압하려 함이다. 정해진 누가 나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모든 타인은 나보다 높으며 그래서 타인은 내가 높여야 하는 대상이고 그리 타인을 높일 때 비로소 내가 높아지는 겸손의 이치를 말함이 불이라 사대부들에게 불은 마귀의 가르침일 수밖에 없기도 함이다. 애초에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명백히 나뉨이 마땅하다 세뇌하는 유학이니, 글을 터득해 기득권으로 들어갈 자들은 애초 정해졌다 설파하는 성리학이니, 그게 틀린 것이라 말하는 불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함이니, 유학이야말로 아무나 하면 안 되는 학문임, 그 자체는 맞는 것이기도 하리라. 한다면 어진 마음으로 해야 하고 시작했다면 깊게 하여 현재의 것이, 애초의 온전했을 본질에 비해 상했음을 아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하는 학문이 유학일 테니 말이다.

그에 비해 불은 그러한 전제 조건이 특별하게 요구됨이 아님에 가깝다 하겠다.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나로선 즐거웠음이다. 모두가 동등하며 그 동등함 가운데 모두가 나보다 높은 것이니 누구를 대함에 있어 존중으로 함, 그 하나만 알게 됨으로도 화낼 일 다툴 일이 적어지니 그 사상이 끼치는 긍정의 효과가 성리학에 대할 바 아님은 분명하게 다가왔다.
내 스승 유정 사명당께서 임진년부터 전란에 몸소 투신하심도, 그분이 그러한 부처 본래의 가르침을 아시는 진짜 수행자이셨기 때문이리라. 어떤 일은 누가 하도록 어느 계층이 하도록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아셨기 때문이리라. 나라가 위급하고 나라를 방비해 낼 군사와 인력이 부족함이 현실이라면, 그 현실을 보아야 함이 수행자가 가져야 할 시각이며, 본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득도의 길로 향하는 수도자라 할, 것임이기 때문이셨으리라. 나보다 높은 나 주위의 이들이, 내가 사는 나라의 백성이 핍박받지 않게 하려 나서는 것이, 부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는 길이었기에 내 스승은 그렇게 몸소 칼을 잡으셨음이다.
나는 부처의 사상을 귀퉁이 정도 맛을 본 유자다. 내가 아는 사대부 중 직접 칼을 쥐고 전장에 섰던 이는, 헤아리기에 다섯 손가락으로 충분하다. 그중 한 명이 저자다. 선대 선조임금의 아들인 저 임금도 사대부로서 드물게 전장에 섰던 용맹한 자였다. 그때의 용맹함과 과감함이 점차 사라져감이 슬픈 일이다. 저 임금이 그때 왕자의 신분으로 직접 친정(親征)하므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남이 가능했던 것이고 그래서 우리 조선이 최후에 이김이 가능했다. 백성이 의병으로, 내 스승 유정을 위시한 승병들이 왜와 칼을 맞대고 싸울 때 저 사대부들은 저와 제 식솔 목숨 건사에나 여념 없었음이, 엄연한 사실이다.
내 스승 사명당의 입적(入寂)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겠다. 제자로서 그 정도도 감지하지 못한다면 제자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스승님이면 열반(涅槃)에 드시겠지……. 비석에 올릴 일대기는 내가 쓰리라.

달이 밝구나. 내 누이 난설헌, 그녀의 그림 한 폭 꺼내 보아야겠다.

3

“과연 옛 현인들의 말씀은 버릴 것이 없다.”
“예? 어떤……?”
“아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 있잖느냐 왜. 저 절경이란 거를 아무리 쳐다보고 감탄을 해봐도 끼니때만 되면 배가 고파 더는 눈에 들어오질 않으니 말이다.”
“아… 예… 하하.”
“원 그놈도. 재미가 없으면 안 웃고 말지 뭘 억지로 웃기는. 부처님은 제 마음과 다르게 행동하는 인간을 미련하게 여기신다 이놈아.”
“네? 아, 예. 스님, 그런데 큰스님께서 보내신 격문(檄文)의 내용은 무엇이옵니까? 혹시 큰 스님께서 건강이라도 안 좋아지신 건 아닌지요?”
“하 그놈 쓸데없는 소리는! 그분이 어디 질병 따위를 걸치실 분이더냐? 겨울에도 솜조차 넣지 않은 옷을 걸치시는 분 아니더냐.”
제자의 물음은 정당했다. 일흔이 넘으신 분이니 건강이 온전하실 리만도 없으실 것이었다. 그런 분이 이토록 우국충정으로 벌렁벌렁하시고 이 정도 뜨거운 독려(督勵)를 몇 줄의 글에 담을 만큼의 총기가 살아있으신 것이다. 스승 하나 잘 얻음으로도 이번 생애는 건진 셈인가… 나는 생각한다. 제자에게 면박을 주는 부당하고 유치한 장난에 소박한 행복을 느끼며 유점사로 돌아가는 길, 삼 년 전 기축(己丑)년의 기억이 스친다.

조정의 사대부들이 본격적으로 당파싸움을 벌이기 시작하던 때일 것이다. 누가 더 치밀한 계략을 세우고 상대보다 월등한 음모를 설계하는 가로 경쟁하던 그들만의 긴박한 시절이었다. 남의 목숨 수십 수백을 두고 저희끼리 권력 놀음하던 그 불똥이 변방의 일개 중인 나에게까지 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꼿꼿하고 바른 선비이던 이산해와 오랜 친분이 있던 나이기에 그가 소개한 정여립 그와도 안면이 있던 터라 강릉 관아에서 날 포박해갔었고, 그 총명하던 허균을 비롯한 강릉의 유생들이 날 위해 구명 탄원을 해줘 풀려났던. 정여립이 실제로 반란을 획책했는가는 여전히 누구도 진실을 알 수 없는 일이며, 알 수 없음이라는 그 자체가, 동인 서인 저희끼리의 음모와 암투 그게 다였음을 말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문제는 그들이 나라 권력의 중심이라 그 짓들로 나라가 흔들려갔음이고 그 결과로 오늘에 이름이다. 그래, 그들의 그런 짓들의 결과가 임진년 바로 오늘을 초래함이다. 그리하여 내 스승께서 이런 격문을 써 보내오심까지 이른 것이다. 스승께서는 당시 한양으로 압송돼 가셨더랬지. 내 스승과 말 몇 마디를 섞은 미련한 임금이 그 와중에 사람 가려내는 눈은 있어 곧 풀어주었기에 망정이었다만. 사사로운 앙금을 갖지 않으시는 품성의 스승이시기도 하거니와 설사 그런 게 남아 있다 한들 나라에 생겨버린 변고에 그런 감정이 작동될 리 없음 또한 내 모를 수도 없다. 그것이 참된 구도를 추구하는 불자(佛者)와 불자(佛子)로서의 마음가짐이리라.
아니 그 전에 불자도 백성이다.
유점사 법당과 앞마당 그리고 저 아래 비탈까지 그 불자들 이백 여가 모였다. 유학이 지배한 이 나라에서 천대받음이 명확한 길로 들어선 데에는 저 이백여 명 각자의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살아온 저마다의 이야기가 오늘 폭발하고 소멸할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좇는 불자들이자 중생(衆生)들이다. 우리는 태어나 사는 의미에 대해 궁금해하고 그에 비밀이라도 있는지 알고자 수행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이다. 너희 중에 그 비밀이나 답을 얻은 자가 혹 있는가? 내 나이 쉰에 가까워졌다만 나는 도통 모르겠다. 알게 됨도 몇 가지 없다. 사람은 귀하다는 것! 사람이 귀함은 그 목숨이 귀함인 것! 나보다도 내 앞의 타인이 귀하다는 것! 그 타인의 목숨이 귀하다는 것! 내 이웃의 목숨! 내 마을의 목숨! 내 나라의 목숨! 내 국토의 목숨! 나와 같은 내 백성의 목숨! 그리고 우리가 불자이기 이전에 백성이라는 것, 그 정도의 사실들만 명확하게 깨달은 정도다. 자! 나라는 누가 지키는가? 군이 지키는가? 장수가 지키는가? 아니다! 졸(卒)이 나선다! 졸이 나서서 싸운다! 그리하여, 이기거나 져서, 살거나 죽어서! 나라를! 내 백성을! 지킨다. 지금 우리의 이 나라는 허약하다. 유생들은, 저 사대부들은! 저희의 이득에 혈안 돼 있다. 그래서 당파싸움으로 서로를 죽인다. 저희가 이 나라 조선의 백성 중 하나하나라는 것은, 모르고! 이미 챙긴 권세를 더 부풀리고자 그 짓들만 해대 옴이다. 조정의 권신들이 그러니, 매섭게 경비 되어야 했을 우리 국토의 변방과 곳곳의 경계가 어땠겠는가? 농사 하나에도 기운 다 쓰고 지친 백성들에게 군졸의 의무까지 부가해놓고 저희는 세금 한 푼도, 병역의 의무에서도 빠지는 게 저 사대부들이다! 이런 허술한 나라를 쳐들어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일 정도다! 그래서! 오늘! 결국! 왜(倭)! 저놈들이! 여기! 우리 땅에! 이 조선에! 쳐들어온 것이다! 너희는 왜 승려가 되었는가? 부처님의 뜻을 좇으며 살고자 그랬는가? 아니다! 거짓말이다! 승복을 입고 거짓말이나 해서야 되겠는가? 먹고 살길이 없으니 먹고 살고자 할 수 없이 택한 길이지. 아닌가? 서자이고 얼자여서 받는 천대에 서럽고 화가 나서 절로 탈출해 온 것이겠지. 아닌가? 부끄러울 일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없다! 원래 부처님은 서러운 자들의 편이다. 그렇게 서럽지 않아 보고자 이렇게 승복들을 입고 있는 우리라면! 이렇게도 귀한 정신의 가치를 위해 살고자 이 길을 선택한 우리라면! 자, 이제 어째야 하는가? 나를, 내 이웃을, 저 백성을, 저들의 부모와 아내와 형제와 식솔을! 저 왜놈들에게 얌전히 내어주면, 그게 부처의 뜻인가? 살생하지 말라 하시고 모두를 사랑하라 하신 부처이시니 저 왜놈들에게 우리가 그래야 함인가? 승려 신분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됨이니 가만있는 것이 옳은 일인가? 부처를 숭상한다는 저들이니, 그러면 우리 중들만은 저들이 살려주고 대우해 줄지도 모르니 그리하면 됨인가? 아니면! 그게 아니면! 그럴 수 없으면! 우리가 우리를, 이웃과 백성과 내 식솔들을!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지켜내야 하는가? 뭐가 맞는가? 또 말하지만, 나라는 누가? 군졸이 지켜왔다! 이 나라는 늘 그래왔다. 우리가 군졸이 되자. 우리가 졸이 되어 직접 칼을 잡자! 조선의 졸이 얼마나 강한지, 저놈들이 얼마나 분수를 모르고 겁 없이 남의 나라 들어와 헛짓에 있음인지! 우리가! 졸이 돼서 보여주자! 부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남의 것을 탐하고 가지려 드는 자들은 귀하지 않다. 극도의 귀하지 않은 목숨이면, 너에게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려는 그런 목숨이 있는 것이면, 병신처럼 당하지 말고! 그 목숨 네 손으로 거둬라! 그러셨다.”

남의 나라 남의 땅에 들어와 노략질 범함이 적성에 맞아 보이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딱하고 추하다. 딱하고 추한 그 일은 또한 쉽게 되는 일도 아닌 모양이었다. 왜놈들은 제때 제대로 된 음식을 구하지 못해 굶주렸고 굶주린 약탈자들은 기세도 기운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와 승려들은 정해진 때 정해진 양식을 먹어왔기에 힘이 강했다. 또한, 매일 정신을 고양하며 살아온 자들이 한뜻으로 일어난 봉기의 기세란 빈둥거림을 반복하는 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는 것이다.
우리가 훨씬 강했다. 왜놈들은 작고 약했다. 우리는 침략자들을 많이 죽였다.
“대사님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묘향산이다. 임금이 평안도 어디 피난 가 계시다는데 임금 코앞까지 왜놈들이 들이닥쳤다는구나. 오랜만에 스승님을 뵙겠구나. 가는 길에 새라도 한 마리 잡아야겠다. 스승님이 새를 좋아하시거든.”
무슨 말인지 모르는 제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음을 보고 난 웃는다.
내게 사명당(泗溟堂)이란 법호를 주신 분, 내 스승이시다.

4

태도의 맵시나 눈이 형형(炯炯)한 것이, 맑은 자로다. 그가 입을 연다.
“오다가 냇가에서 쉬는데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너무나 예쁜 새라 저도 모르게 넋 놓고 구경을 했지 뭡니까. 아니 그런데 이 새가 바위에 내려앉더니 저를 보더군요. 고개를 까딱거리며 뭐라 말을 하는 거 같아 고개를 들이밀고 그 짹짹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았지요. 그랬더니, 아 이 새가 나를 데려가 나를 데려가라고, 이러지 뭡니까? 그래서 마침 대사님께 드릴 선물도 준비하지 못하고 해서 잘됐다 싶어 잡아서 데려왔지요. 승려인 도리로 살아있는 생물을 포획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지만 아 그래도 대사님을 뵈러 오면서 빈손으로 올 수도 없어서 그런 것이니 나무라진 말아주십시오. 지금 이 품 안에 있습니다. 막상 갖고는 왔는데 어째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 새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놓아줄까요?”
재밌는 자다. 나를 시험하려는 의도야 괘씸하기도 하나 재치가 있음은 저치가 선한 인간이라는 증거일 터. 새라고? 허허. 새가 무엇이냐. 새는 자유를 상징하지. 어쩌다 보니 승려가 됐지만, 문득문득 속세의 욕망이 꿈틀대 저잣거리에 나가 술도 마시고 싶고 여자도 품고 싶은 욕망을 다스리기 어렵다는 말일 터. 나더러, 너도 그래왔을 텐데 그럴 때 어떻게 극복을 해냈는가, 심지어 현재도 그러한 번뇌(煩惱)에 괴로운 중이진 않는가, 그걸 묻고 있음이 아닌가.
제 아비 나이쯤일 내게 초면에 묻는 물음으론 당돌하고 날카롭고 치밀하구나.
“젊은 나이에 명성이 이미 자자하다는 대승이 찾아온다는 서신을 보고 며칠 전부터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아무런 이룸도 깨달음도 없이 이런 산골에 얌전히 처박혀 불경이나 욈을 큰 과업으로 여기고 연명 중인데 말이오. 과연 유정이란 이름의 이 젊은 대승은 얼마나 큰 인물일까, 그 어떤 범접하지 못할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혹 이미 해탈(解脫)의 경지에 든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에 있느라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이오. 만나게 된다면 나이며 뭐며 이런 굴레 따위일랑 걷어치우고 무조건 엎드려 배움을 청해야겠다, 이렇게 다짐을 하면서 말이오. 그런데 생각이란 것이 본래 한번 하게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 아니겠소? 가만히 생각을 이어가 봤더니 아 글쎄 이 속에서 무언가 스멀스멀 또 올라오는 것이었소. 이게 뭐지 이게 대체 뭐지 왜 갑자기 속이 답답하고 뒤틀리는 거지, 그러다 한참 만에야 그 정체를 알 수 있었지 뭐요. 질투였소. 아 이 나이에 그만, 소문으로 들은 젊은 대승을 내가 질투하고 있는 거였소. 뭐? 인품이 이미 하늘에 닿아? 유생들이며 신분 막론하고 격의 없이 어울리길 즐겨 해? 그 모든 이들로부터 신망을 얻어? 입을 한번 열면 지나가던 동네 강아지들까지 모여들어 그의 말을 경청해? 와, 이런 자가 있을 수가. 이날 이때껏 묘향산 이런 산골에 틀어박혀 수양한답시고 홀로 자위하는 꼴인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고 또 부끄러워짐을 스스로 아닌 척하기 힘들었소. 대체 뭘 했단 말인가 나는. 나도 틀어박히기 전에 세상을 더 유랑할 것을. 더 많은 걸 보고 들을 것을. 모든 계층의 모든 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것을. 혼자 득도의 길을 걷는 척하지 말고 세상 속에 있을 것을. 유생들 앞에서도 시를 뽐내고 정국을 논하며 세상사의 이런저런 이치를 놓고 토론도 할 것을. 그랬다면, 나도 어쩌면 그 젊은 대승 정도의 명성까진 못되어도 이 평안도 안에서라도 멋진 노승 한 사람 있다 칭찬을 듣고 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가 허허 부끄럽게도 날 덮치지 뭐요. 속세를 멀리해야만 득도에 이르게 되는 줄 알고 이런 산속에서 너무 게으르게만 산 나를 난 한참을 나무랐소.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아침부터 목욕재계 뒤 대승을 맞으러 이렇게 나왔소만, 아 이 며칠 동안의 번뇌가 오늘에까지 나를 괴롭히지 뭐요. 이미 큰 경지에 오르셨을 게 분명한 분을 맞는 것이니 직접 성황당 아래까지 맞으러 나가야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오히려 정도를 넘는 것이어서 손님께 부담을 드림은 아닐지 대체 어느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 한참을 망설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젊지만 이미 크신 분께 저 역시 여쭙고자 합니다. 크신 분께서 제 입장이셨다면 어찌하셨을까요? 한참 앞까지 직접 나오셨겠습니까, 아니면 절 안에 머물러 있으셨겠습니까? 어리석은 물음일지 모르나 부디 현명한 답을 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그가 무릎을 꿇는다.
“소승의 무례를 용서 바랍니다. 소승 감히,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님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옵니다.”
그를 제자로 맞기로 한다. 그에게 사명당(泗溟堂)이란 법호를 내린다.
“사명, 자네는 이 땅에 전쟁이 난다면 어찌하겠는가?”
“예? 아… 칼로든 입으로든 도적놈들을 혼을 낼 것입니다.”
“자네다운 답이로군. 그런데 그들이 도적인 건 왜 그러한가?”
“조선이 압록강을 넘겠습니까, 밑으로 왜를 침략하겠습니까. 전쟁이 난다면, 침범이든 침략이든, 당하는 입장이겠지요. 여진을 염려하십니까? 지금도 늘 넘어오고는 있다 듣긴 했습니다만.”
“왜라네. 그들이 머지않아 올 것이네. 남의 것을 탐하는 기질이 강할 수밖에 없는 족속이지. 섬이잖나. 답답하겠지. 그들은 큰 대륙의 명나라를 부러워한다네. 부러워함은 갖고 싶게 되는 법. 조선은 명나라를 그저 숭배하잖나. 왜는 갖으려 하네. 그러니 조선으로 오겠지. 게다가 곧 오다 노부나가 아니면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 두 자 중 하나가 왜 전체를 통일할 걸세. 그러면 어찌 되겠나? 그 많은 그 땅의 칼잡이들이 실업자가 되겠지. 그들이 조선을 침범할 이유는 많다네. 칼로든 입으로든 혼을 낼 것이다… 그래 그때 필시 꼭 그렇게 하게나.”
“네 스승님. 그리고 저, 전부터 하나 꼭 여쭙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이런 겨울에 솜도 안 넣으신 그런 옷으로 어떻게 이리 밖을 다니십니까? 전 이렇게 입고도 추운데 말입니다.”
“저 친구에게 배운 거라네. 자네가 요즘 사형으로 모시는 바로 저.”
휴정과 유정의 눈에 웃통을 벗고 도끼로 나무를 패는 사내가 들어온다.

5

기골이 늠름한 사내가 경사진 비탈을 뛰듯이 내려오고 있다.
“기허(騎虛), 자넨 몸 하나는 타고났군. 이런 겨울에도 그런 옷으로 버티다니.”
“옷이라는 건 맨몸을 가리는 용도지유 뭘.”
“자네에게는 늘 배우기만 하는군.”
“놀리지 마세유.”
“오늘도 무술 연마에 동굴에서 면벽 수행까지 하고 오는 길인가?”
“그렇쥬. 오늘이 마지막 수행이었네유.”
“내일 떠나는 건가? 공주로 간다고? 먼 길이 되겠군.”
“그류. 제 고향이기도 허니께유. 공주 갑사에서… 준비하겄슈.”
승려들이 놀라 달려온다. 그럴 만도 하다. 내 목소리야 마음먹고 내지르면 온 산이 울릴 지경이니. …….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파천(播遷)이라니… 임금이 파천이라니……. 현명하지도 너그럽지도 우러르게 되지도 않는 자라 듣긴 했지만, 어떻게 임금이란 자가,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궁을 버리고 피난부터 생각했단 말인가……. 더구나 유자란 자가 종묘와 사직을 버리고 도망을 치다니. 아무리, 임금이 적에게 잡히면 그걸로 전쟁은 지는 것이고 그러면 이 나라가 적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이라곤 하지만, 그렇게 다 팽개쳐버리고 도망을 택할 정도로 못난 인간이 지금 이 나라의 왕이란 말 아닌가. ……. 아니다… 아니야. 왜 이런 지경으로 왔겠는가. 유자들이 지배한 나라, 그들끼리 권력 놀음하는 나라, 군사고 뭐고 없음이나 마찬가지인 나라……. 이 나라가 이렇게까지 된 이유다. 그래도 그렇지… 힘으로 누구에게든 일방적으로 밀리는 나라가 아님이지 않았나. 고려 때 유목민들에게 크게 당했어도 대대로 군사민족인 우리가 왜 이 지경으로 몰락한 것이란 말인가. 위로 아래로 늘 침략하는 무리에 둘러싸여 있음을 저들은 잊고 산 것인가. 길러야 할 힘은 기르지 않고, 방비해야 할 곳에 세금과 인력은 쓰지 않고 뭘 한 것이란 말인가. 하긴, 정작 사대부란 것들은 받아먹기만 할 뿐 나라를 위해 감당할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 왔으니. 용서하지 않겠다. 우선 저 왜놈들부터 숨통 끊고.
우리 조선에 승려가 많기도 하구나. 아까만 해도 삼백여 정도였는데…….
“난 기허(騎虛)라 허유! 밥들은 먹고 왔는지들 모르겄구먼. 우리가 왜 모였는지 아슈? 밥값을 하기 위해서! 놀라셨슈? 놀라지들 마우, 내가 목소리가 좀 커 원래. 밥값! 그걸 하고 살자는 거유. 나와 여기 갑사 승려들은, 오늘 같은 날이 올까봐 매일 무예를 닦으며 그리 살았슈. 다들 비슷할 거 아니유. 우리가 오늘 아침에 먹은 밥 말유, 그거 누가 준 거유? 시주해 준 사람들이 누구유? 백성 아니유? 이 나라 백성 아니유? 그들이 준 거 아니유? 아, 우리도 백성이고! 백성이 뭐유? 아 백성이 뭐유? 백성이 나라 아니유? 백성이 나라유 나라! 우리가 나라라고! 우리가 나란디, 그거 뺏기게 생겼다는 거 아니유 지금……. 어째야 허요? 아 어째야 허요? 땅 뺏기고 나라 뺏기면 이제 당장 밥을 못 먹잖유. 저 왜놈들헌티 빌어먹어야 되는 거 아니유. 그름 되겄슈 안 되겄슈? 가서 확 다 쓸어 죽여버려야 되는 거유 아니유? 갑시다! 아 지금 당장 갑시다! 혹시 알우? 우리가 이러고 먼저 나라 구하는 모범 보이면 도망갔다는 저 왕족 종자 중에 왕자 누구 하나라도 정신 차리고 우리처럼 칼을 잡을지. 자, 가자고! 청주로 이동합시다! 청주성부터 되찾읍시다!”
청주성이 보인다. 기습으로 들이칠 것이다.
“왜놈들 다 조무래기지 뭐.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어! 여기 우리 땅이여! 이 공기도 우리 공기여! 왜 우리 공기를 들이마시고 지랄이냐고. 숨통을 뚫자고! 저거 우리 성이야! 되찾자고! 갑시다!”
기허, 아니면 영규(靈圭)라 불러줘도 좋고.
난 임진년 올해를 못 넘기고 죽을 것 같다.
옳은 길이 귀한 길이다, 부처님 말씀이지. 옳기 위해 칼을 뽑는다.
우리 저마다가 지팡이나 칼이나 도끼를 들었다.
자… 지금이다! 팔백여가 몸을 일으킨다. 우리가 달린다.
우리 승병이 일으키는 흙먼지가 아유 매캐하니 정겹구먼.

【단편소설 심사평】
웅성깊은 관조와 사유의 시선 신뢰

2025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최종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4편이었다.
〈극락조화〉는 응모작 중 가장 묘사가 빼어난 작품이었으나 서사가 평면적이고 뒷심이 없었다. 이 작품의 백미는 상처를 극락조화로 환치하는 응모자의 따뜻한 시선인데, 이러한 발상은 신기섭 시인의 〈극락조화〉에 빚지고 있는 것이어서 가장 먼저 최종심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구텐베르크, 조선을 베끼다〉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판 인쇄술이 고려 사찰의 주물사 제조법을 따른 것이라는 발상에 의해 쓰인 팩션(Faction)소설이다. 구텐베르크의 생애를 시대 순으로 그리다 보니 이 작품은 단편에 담기에는 서사가 방대할 수밖에 없었다. 응모자에게 장편소설로 확장해서 쓸 것을 권하고 싶다. 개작 시 구텐베르크가 고려 사찰의 주물사 제조법을 배워가는 대목에서 리얼리티를 확보해야 할 것이고, 한국소설인 만큼 누구의 시점에서 쓸 것인지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제비집〉은 구성주의 비평에 입각해 봤을 때 응모작 중 기술적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 ‘제비집’이라는 제재를 통해 인간관계의 폭력성을 꼬집고 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귀농한 화자인 ‘나’와 국제결혼한 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은혜 씨’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결속돼 있지 않은 것은 결정적인 흠이다. 이 작품이 미적 완성도를 지니려면 농촌공동체에서 화자가 겪는 고충이 주를 이룰 게 아니라 화자가 은혜 씨의 상처를 자비의 손길로 보듬는 내용이 주를 이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야 할 것이다. 응모자는 소설은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이고 자비의 시선으로 ‘타인의 얼굴’을 보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숙고해보길 바란다.

소설은 장점이 곧 단점일 수밖에 없다. 장광설(長廣舌)과 의고체(擬古體)의 경계에 있는 기이한 문체로 쓰인 〈봉기(蜂起)〉 는 숭고미(崇高美)의 장점과 계몽주의의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광해군, 허균, 서산대사 등 주요인물들이 사명대사를 바라보는 시점으로 구성돼 있는데 등장인물 모두 같은 목소리로 사명대사를 상찬하고 있어서 동시성의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것도 작품의 흠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자는 다른 응모자들과 달리 웅숭깊은 관조와 사유의 시선을 지니고 있어서 신뢰가 갔다. “모든 타인은 나보다 높으며 그래서 타인은 내가 높여야 하는 대상이고 그렇게 타인을 높일 때 비로소 내가 높아지는 겸손의 이치를 말함”이 불교이고, “위급한 나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야 득도의 길로 향하는 수도자”임을 역설하는 것이 불교문학의 본령일 것이다.

“위험이 있는 곳에서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는 휠덜린의 명제는 처염상정(處染常淨)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오염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 허공에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당선자와 낙선자 모두 글밭에 한 송이의 만다라를 피우길 기원한다.

심사위원/남지심, 유응오(예심, 대표집필)

【당선소감】

40대 후반에 이르도록 학교에서의 전공이나 하고 싶던 글쓰기와는 직접적 상관이 없는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온, 밥벌이생활의 한탄만으로 인생의 전반기를 게으르게 버린, 그야말로 흔한 부류로의 자격이 충분한 그런 자입니다.

글 쓰는 모습의 자신을 늘 상상에만 가둔 채 열심히 인생을 낭비하며 얼마 되지도 않는 그동안의 벌이를 담뱃값과 술값에 즐거이 써왔더랬지요.
삶을 더 낭비하기가 거울 속 나에게 미안하여 키보드를 치기로 수줍게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2020년 여름쯤입니다.
4년 만에 이런 하나의 결과를 마주대함에, 이 마주대함의 자격유무를 자문해봅니다 .
제 자신은 대답해주지 않는군요. 앞으로 독자에게 듣도록 하겠습니다.
벌써부터, 고통 없이 즐거움만 안은 채 글을 쓰는 날이 오길 희망하는 저를 볼 때, 글을 써나갈 자격이 있는지 의심은 듭니다.
의심이 깨트려지는 날들로 꾸려가야 하겠습니다.
읽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력]

박찬우

-1977년 서울 출생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졸업

작품평 0

최대 500자

아직 작품평이 없습니다. 첫 번째로 남겨 주세요.

2025년 소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