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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5년 동화

내 꿈은 빈칸

김은희

국어 시간에 꿈에 관한 글짓기를 했다. 담임이 내가 쓴 글을 읽고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윤도하! 넌 꿈이 놀고먹는 거야?”

담임의 말을 들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키득거렸다. 장난이나 농담은 아니었다. 나는 누구보다 진지하고 솔직하게 썼을 뿐이다. 담임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았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담임이 일주일간 시간 여유를 줄 테니 꿈에 대한 글짓기를 다시 해 오라고 했다. 어차피 죽을 텐데 왜 꿈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그 숙제만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고 책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엄마가 나를 붙잡고 물었다. 내가 오기만 기다린 것 같았다.

“윤도하! 너 어제 학교에서 뭐라고 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에서 특별한 말을 한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자 엄마가 다시 물었다.

“네가 사람은 다 죽는데 학교는 다녀서 뭐 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뭐 하냐고 그랬다며? 방금 선생님한테 전화 왔어. 너 땜에 수업하기 힘들다고.…… 게다가 오늘은 놀고먹는 백수가 꿈이라고 했다면서? 너를 어쩌면 좋니?”

엄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도어락이 열렸다. 누나였다.

“야, 윤도하! 너 잘 만났다. 너 민우한테 뭐라고 했어?”

나를 보더니 누나가 다짜고짜 따졌다. 누나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다.

“내가 뭘? 왜 다들 나한테 난리야?”

선생님한테도 한 소리 들었는데 엄마도 누나도 정말 너무하는 것 같았다.

“네가 나한테 필요한 건 면도기라고 했다며? 민우가 백 일 선물이라며 면도기를 주는데 기가 막혀서. 엄마, 나 쟤 땜에 못살겠어.”

누나가 씩씩대며 노려보았다. 얼마 전이었다. 누나 남자 친구 민우 형을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다. 민우 형이 누나랑 만난 지 백 일이라며 누나 선물을 사주고 싶은데 뭘 사주면 좋을지 물었다. 평소 누나가 다리털 없애려고 왁싱 하는 걸 봤다. 왁스를 발라 굳힌 다음 떼어내는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했다. 갑자기 그 생각이 떠올라 면도기를 사주면 좋아할 거라고 했다. 처음에 민우 형은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내가 누나의 실상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민우 형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누나에 대한 환상이 홀딱 깨진 것 같았다. 민우 형 얼굴을 보니 내가 좀 심했나 싶었지만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다. 엄마는 화가 난 누나를 달랬다. 그 후 누나와 엄마의 합동 잔소리를 한 시간이나 들어야 했다.

기분도 꿀꿀했고 더 이상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럴 땐 삼촌 가게로 갔다. 삼촌은 우리 가족 중 할아버지 다음으로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삼촌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초일류 대기업에 입사했다. 할머니 말로는 학교 다닐 때 삼촌은 전교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였다고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것도 삼촌을 닮아서라나. 할머니의 자랑이었던 삼촌은 치킨 가게 사장이 되었다. 6개월 전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동네에 치킨 집을 차렸다. 삼촌 말로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삼촌은 치킨 집 사장을 하면서 천문학과 편입 시험 준비를 했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삼촌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난 삼촌이 치킨집 사장이 된 게 좋았다. 예전엔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었던 삼촌을 자주 볼 수 있는 데다 맛있는 치킨까지 공짜로 먹을 수 있었으니까.

갑작스럽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촌도 변했다. 할아버지는 매년 할머니랑 크루즈 여행을 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여행은 가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삼촌은 천문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미루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새벽에 치킨 집 문을 닫고 아파트 옥상에서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보곤 했는데 나도 주말엔 삼촌이랑 같이 별을 보기도 했다. 삼촌은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삼촌은 별이 왜 그렇게 좋아?”

언젠가 내가 물었다.

“별은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고 고루 비춰주고 모두를 빛나게 해주잖아.”

별을 좋아하는 이유치곤 뭔가 좀 시시했다.

“에잇, 그게 이유야?”

노골적인 내 반응에 삼촌은 뭔가를 좋아하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냥 좋은 게 진짜 좋아하는 거라면서. 우연히 별이 좋았는데 별로 만난 인연이 늘었고 그 사람들이 좋아지면서 별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삼촌 말을 알 것도 같았다. 나도 우연히 별이 좋았는데 내가 좋아하는 할아버지와 삼촌이 별을 좋아하니까 별이 더 좋아졌다. 할아버지, 삼촌과 함께 별 보러 천문대며 여기저기 다니다 보니 추억이 쌓였고 별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이런 우리를 가족들은 스타 탐험대라고 놀렸다.

할아버지와는 공통된 관심사가 많았다. 게임이며, 별, 외계인, 래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집에서 나 다음으로 게임 아이템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할아버지였고 누가 가진 아이템이 더 좋은지 실랑이를 하기도 했었다. 내 베프였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가버린 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삼촌, 바빠?”

외삼촌 치킨 집은 프랜차이즈 가게로 깔끔하고 아담했다. 삼촌은 아무리 바빠도 나를 보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삼촌 맞은편에 앉았다. 삼촌은 치킨 박스를 접었고 나는 삼촌이 튀겨 준 바삭한 치킨을 먹었다.

“삼촌! 삼촌은 꿈이 뭐였어?”

삼촌은 내 질문이 뜬금없는지 왜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하냐고 물었다. 꿈이 놀고먹는 거라고 써서 선생님한테 야단맞았다는 이야길 했다.

“하하하. 윤도하답네!……근데 꿈은 자주 바뀌는 거야. 없다가도 생기고 바뀌기도 하고 그래.”

삼촌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내 고민이 별거 아니라는 듯 넘겼다. 삼촌이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나는 재차 삼촌에게 꿈을 물었다. “내 꿈? 처음엔 의사였어. 나중엔 천문학자였지만.”

삼촌의 꿈이 천문학자였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근데 삼촌 꿈이 의사였다는 건 처음 들었다. 게다가 꿈이 바뀌기까지 했다니 궁금했다.

“왜 의사였다가 바뀐 거야?”

“의사는 내 꿈이 아니었어. 난 벌레만 봐도 무섭고 개구리 해부하는 것도 무서운데 어떻게 의사를 하겠어? 내가 공부를 잘하니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기대한 꿈이었지.”

삼촌은 치킨 박스 접은 걸 한옆에 두고 주문 전화를 받으러 일어섰다. 삼촌이 바빠질 것 같아 나도 막 일어서 나가려는데 삼촌이 말했다.

“도하야! 이번 금요일에 유성우 보러 안 갈래?”

“당근 나야 좋지.”

나는 신이 나서 가겠다고 말했다. 유성우의 또 다른 이름은 별똥별이다. 작년 여름 방학에 할아버지, 삼촌, 누나와 함께 세계 3대 유성우 중 하나인 페르세우스 유성우를 보러 갔다. 그때 누나가 그랬다. 별똥별이 땅에 떨어지기 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별똥별 찾기도 힘들었지만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비는 건 더욱 어려웠다. 그때 할아버지가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야 했다. 작년엔 소원 빌기에 실패했지만, 금요일엔 꼭 소원을 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삼촌은 그날 보자며 환하게 웃었다. 삼촌이랑 천문대에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삼촌과 약속한 금요일이 되었다. 삼촌이랑 천문대에 간다니 설렜다. 엄마와 아빠는 장사가 잘되는 금요일 밤에 별 보러 천문대에 가는 삼촌이 나만큼이나 철이 없다고 혀를 끌끌 찼다. 오늘따라 밤하늘은 까맣고 별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우리가 도착할 무렵, 천문대는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도시에서 보는 하늘과 천문대에서 보는 하늘은 달랐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할 즈음, 섬광처럼 유성우가 땅에 떨어졌다. 순간이었지만 다행히 나는 소원을 빌었다.

“삼촌! 삼촌은 소원 빌었어?”

궁금해서 내가 물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삼촌은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나도 소원을 빌었다

“삼촌 무슨 소원 빌었어?”

“오늘을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회사 나오면서 결심한 게 있었어. 오늘을 살자! 하고 싶은 걸 내일로 미루지 말자!…… 별 보니까 갑자기 아빠 생각난다. 아, 보고 싶다.”

삼촌은 별을 보며 아련하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아무도 몰랐다. 갑작스러운 이별에 식구들 모두 힘들었다. 나도 삼촌만큼이나 할아버지를 좋아했고 따랐다. 할아버지는 밤하늘과 별을 좋아했다. 삼촌이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어쩌면 할아버지 영향이었을지 모른다.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 삼촌!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대. 할아버지도 별이 됐겠지? 별이 되면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영원히 사니까 좋겠다, 그치?”

“저렇게 아름답게 반짝이는 별도 다 수명이 있어. 별도 언젠가는 완전히 타서 빛을 잃고 소멸하게 돼. 죽는 거지.”

삼촌이 별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별들도 죽는다고?”

별을 쳐다보던 나는 놀라서 삼촌 얼굴을 보며 되물었다.

“그럼,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건 언젠가 다 죽어.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 더 반짝이고 아름다운 거야. 별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시원한 밤바람이 뺨 위로 흘러들었다.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았다. 삼촌이 그랬다. 언젠가 죽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오늘 하루를 충실하게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도 생길 거라면서. 별똥별에게 소원을 빌었다. 내게도 꿈이 생기게 해달라고. 삼촌 말처럼 오늘을 열심히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길까? 아직 내가 되고 싶은 꿈이 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꿈을 대신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을. 이것저것 도전하면서 나 스스로 꿈을 찾다 보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꿈이 생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내 꿈은 여전히 빈칸이다. 아니, 아직 빈칸일 뿐이다.

<끝>

[당선소감]
죽음 문턱서 시작한 글, 내면 치유할 기회 됐다

김은희

-1969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학사·석사·박사 졸업

-이화여대 및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한양대 대학원, 고려대 교육대학원, 성신여대, 경인교대 등 강의

-전 명지대 교육대학원 교육학과 유아교육전공 전문교수

-브런치 연재 및 에세이 ‘당신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습니다’ 출간

당선되었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릴 적 꿈은 작가였지만 집안의 반대로 그 길을 가지 못했습니다. 오랫동안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아오느라 글쓰기는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운명처럼 건강검진에서 유방암이 발견되면서 일상이 송두리째 변했습니다. 재직 중이던 학교를 그만두고 수술, 항암, 방사선, 표적 치료를 견뎌야 했습니다.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었지만 죽을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는 생각보다 힘겨웠습니다. 그때였나 봅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글을 쓰면서 두려움을 극복했고 사느라 바빠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조차 몰랐던 내면을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었습니다. 글 쓰는 하루하루가 기쁨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처음에 논문으로 시작한 글쓰기가 에세이를 거쳐 동화로 이어졌습니다. 창작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지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생경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돌고 돌아 제자리에 접어든 느낌입니다. 제가 쓴 동화가 유년의 시기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되고 성장의 자양분이 되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동화 작가의 길을 열어주신 존경하는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치열하게 합평하고 함께 공부한 한겨레 아동문학 작가 교실 78기 동기들께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오늘을 잘 사는 일' 주제로 현실과 낭만, 둘 다 잡았다

올해 응모작은 예년에 비해 다소 줄어든 편이었고 후보로 올릴 만한 작품도 부족하다 싶었다. 무엇보다 신춘문예에서 새로운 시도의 작품이 없어 안타까웠다. 판타지 동화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역시나 고양이 소재가 다수, 최근 유행인 죽음과 영혼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 따돌림당하던 인물이 구제받는 이야기, 자연의 이치를 가르치고자 하는 이야기 등 도식적인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동화의 공식이라는 게 고착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동화의 공식이 있다면 주 독자가 아동이고 아동의 인식을 통해 문제를 관통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체 작품에서 본심에 올려 검토한 작품은 여섯 편이었고, 최종심에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눈 작품은 ‘마지막 아침 식사’, ‘피구하다’, ‘내 꿈은 빈칸’이었다. 세 작품 모두 장단점이 있어서 소재, 구성력, 문장, 인물 구현, 메시지 등 기본적인 점을 살펴 우열을 가리게 되었다.

‘마지막 아침 식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배경의 작품이라 우리의 시선이 확장될 필요성에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전쟁의 참혹함이 현재형인 상황에서 아버지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미화된 인상이라 공감하기 어려웠다. ‘파구하다’는 감정 조절이 어려운 인물과 따돌려진 주인공이 친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정 제어와 시소를 연결한 시도로 어린이의 눈높이를 고려한 점, 외로운 아이들의 긍정적인 관계 형성은 적절하였으나 인물 간의 대화에서 자주 어른이 보이고 놀리는 친구들을 고정해 버린 점은 문제로 남았다.

‘내 꿈은 빈칸’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은 주인공이 장래 희망이나 꿈을 허무하게 느끼는 문제를 통해 ‘오늘을 잘 사는 일’의 중요성을 차분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까지 적절히 구현하였고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면서도 낭만적인 면을 놓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라 이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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