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밴드
팝콘은 함성이라서 우리는 스네어 드럼을 밟는다
산과 하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이 오면
저 멀리서 늑대의 우두머리가 하울링하는 소리가 들렸다
교실 안 아이들의 핸드폰에 폭설 경보음이 울리고
뒤적거리다 발견한 서랍 속에서 눅눅해진 팝콘
밴드 합주실은 꼭대기 층에 있어서
아이들은 지붕 없는 교실에서 자습을 했다
쿵, 쿵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
내가 말했다
셀 때마다 달라지는 계단의 수
잡히는 대로 꽉 쥘 수밖에 없어서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하얗게 질린 손에 온기가 돌아오길 바라며
우린 완전히 고립된 거야
둘 중 누군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열차가 운행하지 않고 교문이 눈에 묻혀도
이곳은 폭설 밴드
너와 나는 깨진 전구와 베이스 기타 줄을 들고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신발장을 지날 때마다 교실에서 이탈한 아이들은 배로 늘어나서
일렬로 늘어선 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오지 않는 담임 선생님께,
추워서 옷을 벗었어요 우린 아직 힘이 넘치고 유순하답니다 서로의 입에 팝콘을 넣어주곤 겨드랑이에도 손을 넣어요,
구두 소리가 마룻바닥을 두드리면 학교는 움직입니다 교시음은 필요 없어요 베이스도요
너는 머리말을 이렇게 장식하기로 마음먹었고
늑대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당선소감]
7살 무렵 "왜요?"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살던 저는 쉽게 확신을 내릴 수 없는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지난 몇 년간 "모르겠다"라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이유가 필요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미래에도 미래를 알 수 없듯, 불안정한 것들을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세계가 흔들립니다. 그들은 저를 두렵게 합니다.
첫 투고에 덜컥 당선되어 놀라움은 금세 부채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모르는 것이 제게 찾아온 것입니다. 다이어리 앞장에 써놓은 '올해가 가기 전에 해보고 싶었던 일'에 줄을 그었습니다. 선명한 힘이 뒷장까지 새겨있습니다. 모르는 힘은 그런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꾹 누른 자국 같은 것이요. 지금껏 그래왔듯 두려워하며 부딪히는 힘으로 떨릴 것입니다. 눈을 열고 귀를 넓히며, 그러한 힘이 앞으로도 저를 땅에 발붙이게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길 바랍니다.
시를 읽어주신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이든 가능성을 열고 격려해 주시는 학교의 선생님들께도 감사합니다. 같이 읽고 쓰는 학우들의 따스한 온기가 문학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느낍니다. 불가해한 이야기들에 대해 고민하며 함께 시간을 견딘 나의 친구들, 문우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깊은 애정과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잘 살아냅시다. 그리고 시의 세계를 처음으로 보여주신 선생님, 손을 잡아 바깥으로 끌고 나와준 Y, 인생의 많은 시간을 뭉쳐 지나온 긴밀한 친구들과 희연, 소담에게, 사랑합니다. 마지막으로 애정하고, 미워하고 또 미안한 엄마, 아빠,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어두워진 기운이 가시도록 마음에 촛불을 밝히고 다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쓸 준비의 준비를 합니다. 오래된 노트북이 무사히 켜지길 기다리며 장바구니에 담긴 책들을 주문합니다. 노트북의 모니터가 환해질 때까지, 얼마간 이러한 공상이 떠올랐다 금세 사라집니다.
〈약력〉
노은
-2003년 서울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재학 중.
[심사평]
예심과 본심이 동시에 진행된 이후, 최종심에서 거론된 작품은 노은 씨의 '폭설밴드'와 방성원 씨의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 두 편이다. '폭설밴드'에서 폭설이라는 고립 공간에서 음악성에 기대어 현실과 환상이 조립되었다면,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의 생활은 일상어의 발화이다. 전자가 시적 장치로 다채로운 발상을 사용한다면 후자는 관찰의 시선이 돋보인다. 당연히 전자는 활발하고 후자는 페이소스에 근접한다. 한 발짝 더 들어가 보면 서로 다른 이 두 작품이 얼마나 좋은지 알게 된다.
'폭설밴드'에서 "쿵, 쿵 / 우리는 무언가를 떨어뜨리기도 하였는데 / 무언가와 바닥이 부딪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커서 // 옥상에서 어떤 아이가 얻어터진다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다 / 누군가 죽은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 너는 그렇게 말할 것 같았다"라는 부분은 거대 폭설 군락이라는 상징이 에워싼 교실의 분위기와 감정에 대한 빛나는 묘사이다. 그런 시간 그런 장소에서 시가 왜 필요한가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 폭설이라는 썸네일을 가진 기묘하고 역동적인 한 편의 영상이 아닌가. "퓨즈가 나가고 모두 조용해지는 한 순간 / 기억 속의 학교는 영원히 어두울 것만 같아"라는 어두운 반전 또한 이 시의 매혹이다. 폭설 속의 다채로운 수다는 어떤 감정으로도 번안 가능한 노은 씨의 고유한 영역이다.
'이사할 때는 누구나 호구가 된다'의 정경은 누구나 겪음직한 삶의 귀퉁이라는 일상이다. 이 소소한 이야기의 마지막은 "문은 닫히니까 괜찮죠? // 문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다시 / 닫다가 자꾸 내가 걸리는 것 같아 // 그냥 열어놓고 지내야죠"라는 구절이다. 이 결말은 느리지만 진솔하고 단순하면서 비범하다. 또한 이 진술에는 신산한 보통 사람의 하루가 고스란히 맺혀 있다. 사실이 아니라 공감을 추구하는 시적 언술이 몸에 베인 창작 습관을 가졌다고 짐작한다.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두 작품 사이에서 주저하면서 어떤 선택도 괜찮다는 논의가 오갈 때쯤, 결론을 위해 우리는 다시 숙고했다. 전자와 후자는 좋거나 더 좋음이 아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 현대시의 섬세하고 다양한 포즈이기 때문이다.
폭발하는 시적 감수성의 넓이와 깊이야말로 심사위원들이 '폭설밴드'의 손을 들어준 타당한 이유이겠다. 언어와 음악이 에워싼 폭설이라는 늑대의 울음은 이 시가 당선작으로 선정되는데 결정적이었다. 당선된 노은씨는 20대 초반, 우리 문학의 전면에 낯선 확장성을 가져주리라 예감한다. 축하를 드린다.
사족이지만 일정한 수준을 보여준 십 대 청소년의 투고작도 잠깐 화제였다.
(심사위원 : 송재학 이병률 김기연)